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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장

아하, 그렇군요!

by hitouch 2017. 5. 14. 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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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군과 싸우다 공을 세운 유대계 소련군 사병에게 상관이 말했다. “자네 공훈을 표창하라고 상신할 생각인데, 훈장을 받고 싶은가 아니면 상금 200루블을 받고 싶은가?” “훈장은 얼마짜리입니까?” “이런 바보 같으니라고. 훈장은 명예일 뿐이야. 돈으로 따지면 1루블도 안 될걸?” “그럼 훈장과 상금 190루블로 해 주시면 안 될까요? 그래도 그쪽이 9루블 남는 장사인데.” 중학교 때 읽었던 ‘유대인의 유머’ 시리즈 중 한 토막이다.


인간 사이에 상하관계가 출현한 이래, 논공행상은 언제나 필수적인 의례였다. 상은 대개 직위와 재물이었지만, 기독교 문명권에서는 11세기 십자군 전쟁 때부터 ‘상 받은 사람’임을 알리는 표장을 의복에 부착하는 관행이 자리잡았다.


우리나라에서 훈장제도는 1900년 4월17일 ‘문관복장규칙’과 동시에 ‘훈장조례’가 공포됨으로써 시작되었다. 이때 문관의 복장은 대례복, 소례복, 평상복의 3종으로 구분하되 모두 양복으로 했으며, 훈장은 금척대수장, 이화대수장, 태극장, 자응장의 4종으로 나누었다. 대한제국 최고훈장인 금척대수장을 처음 받은 사람은 일본 황제, 두번째는 일본 황태자, 세번째는 이토 히로부미였다. 1926년에 사망한 이완용의 명정 문구는 ‘조선총독부 중추원부의장 정이위 대훈위 후작 우봉이공지구’였는데, 훈장의 등급 표시인 훈위는 직위 다음 작위(爵位) 앞이었다.


일제강점기 조선 귀족이나 고등관 등 극소수만 받았던 훈장은 해방 이후 ‘부끄러운 명예’가 되었다. 정부 수립 뒤 독립유공자와 군인, 공무원뿐 아니라 기업인 문화예술인 운동선수까지 서훈 대상이 됨으로써 훈장을 받은 사람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대통령 임기 말’이라는 시기가 생긴 뒤로는 그때마다 정권 공로자들에게 훈장을 대량 발급하는 게 관행처럼 되었다. 4대강 사업에 공을 세웠다는 이유로 훈장을 받은 사람은 119명이었다. 우리 후손들은 저들이 받은 명예를 얼마짜리로 쳐줄까?


- 전우용_ 역사학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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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RANX 아크랑스]


Giuseppe Verdi_ Il Trovatore - Anvil Chorus

https://www.youtube.com/watch?v=ltt_gyJb2z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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