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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 그렇군요!

by hitouch 2018. 2. 1. 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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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강아지를 찾습니다. 찾아주신 분에게는 후사하겠습니다.” 주택가 골목길을 걷노라면, 담벼락이나 전봇대에 이런 문구가 쓰인 종이가 붙어 있는 걸 흔히 보게 된다. 큰길 교차로 주변에는 간혹 “교통사고 목격자를 찾습니다”라는 문구가 쓰인 현수막이 걸린다.

보통사람이 도시 공간 안에 메시지를 새겨 많은 사람에게 전달하는 방법은 이것밖에 없다. 홍보에 적지 않은 돈을 쓸 수 있는 땡처리 전문 업체들은 행사장 인근에 수천장의 벽보를 붙이기도 하는데, 이런 것들을 훼손해도 처벌받지는 않는다. 반면 선거관리위원회가 부착하는 선거 벽보는 개인 집 담벼락에 붙어도 집주인 마음대로 뗄 수 없다.

도시 공간에 종이 한장, 현수막 한개 붙이는 일도 돈과 권력이 좌우한다. 그러니 길을 내거나 건물을 짓거나 조형물을 세우는 일은 말할 나위도 없다. 수십, 수백 평의 땅을 가진 사람은 자기가 원하는 모양의 집이나 빌딩을 지을 수 있고, 수천, 수만 평의 땅을 가진 사람은 건물군이나 리조트를 세워 제 맘대로 이름 붙일 수 있다. 그러나 한 평도 못 가진 사람은 지표 위에 아무런 흔적도 남길 수 없다.

민주주의 체제에서 정치적 주권은 모두가 평등하게 나눠 갖지만, 땅에 대한 주권은 평등하게 분배되지 않는다. 필지(筆地)를 글자 그대로 풀면 ‘붓으로 그린 땅’쯤 될 텐데, 자연이 그은 선과 별도로 인간이 선을 그어 나눠 가진 땅을 표현하기에 이보다 좋은 단어를 찾기는 어려울 것이다. 필지를 표시한 지도가 지적도로서, 우리나라에서는 1898년 광무양전(光武量田) 때 처음 만들어졌으나 전국의 필지를 다 그리지는 못했다. 임야를 제외한 전국의 지적이 다 표시된 지도는 1918년에야 제작되었다.

땅에 대한 소유권을 갖고 확대하는 것은 통시대적이고 보편적인 인류의 욕망이었다. 현대인은 지적도에서 자기가 소유한 땅의 크기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인간이다. 지적도는 각 개인이 가진 실질적인 권력의 크기를 표시하는 권력분포도다.

- 전우용_ 역사학자 -



[ACRANX 아크랑스]


Tom Jones_ Green Green Grass Of Home 

https://www.youtube.com/watch?v=DBVhldoWcb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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