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RANX 오늘의 시]
"오늘 하루는 선물입니다"
9월6일 오늘의 시는 “이어령”의 “정말 그럴 때가 ”입니다.
정말 그럴 때가
이어령
정말 그럴 때가 있을 겁니다
어디 가나 벽이고 무인도이고
혼자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을 겁니다
누가 "괜찮니"라고 말을 걸어도
금세 울음이 터질 것 같은
노엽고 외로운 때가 있을 겁니다
내 신발 옆에 벗어 놓았던 작은 신발들
내 편지봉투에 적은 수신인들의 이름
내 귀에다 대고 속삭이던 말소리들은
지금 모두 다 어디 있는가
아니 정말 그런 것들이 있기라도 했었던가
그런 때에는 연필 한 자루 잘 깎아
글을 씁니다
사소한 것들에 대하여
어제보다 좀더 자란 손톱에 대하여
문득 발견한 묵은 흉터에 대하여
떨어진 단추에 대하여
빗방울에 대하여
정말 그럴 때가 있을 겁니다
어디 가나 벽이고 무인도이고
혼자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을 겁니다
[ACRANX 아크랑스]
Fauré_ Après un rê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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