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월대보름 세시풍속으로 ‘더위팔기’라는 게 있었다. 날이 밝기 전에 집을 나서 아는 사람을 만나면, 그의 이름이나 호칭을 부른다. 그가 대답하면 바로 “내 더위” 하고 소리친다. 이럼으로써 그해 여름에 겪을 더위를 대답한 사람에게 팔아넘길 수 있다고들 생각했다. 물론 남이 팔아넘기려 드는 더위를 사지 않을 방도도 있었다. 자기를 부른 사람에게 대답하는 대신 “내 더위 맞더위”라고 응대하면 된다.
더위는 겨울이 끝나기 전부터 걱정해야 하는 고통이었다. 여름에 더위를 먹으면 한 해 농사를 망치기 십상이었다. 그러니 아는 사람에게 더위를 팔아넘기려는 고약한 심보를 그대로 드러내는 게 세시풍속이 된 것도 이해할 만하다. 하지만 정작 기온은 한마을 사람들을 차별하지 않았다. 한마을 사람들이, 심지어는 같은 가족 구성원이 ‘다른 기온’ 안에 놓일 수 있게 된 것은 에어컨 발명 이후의 일이다.
최초의 에어컨은 1902년 미국의 윌리스 캐리어가 발명한 습기 제거기였다. 캐리어는 1906년 이를 발전시켜 냉방기를 만들었다. 온습도에 민감한 식품공장 등에만 설치되었던 에어컨은 1930년대 중반부터 극장, 호텔 등에도 놓이기 시작했다. 한국인 일부가 에어컨을 처음 경험한 것도 이 무렵이다.
1937년 관부연락선에 처음 설치된 에어컨은 곧 일부 관청과 기업에도 놓였다. 그러나 태평양전쟁 발발 직전 일제는 에어컨 사용을 일체 금지했다. 일부 호텔 등에 에어컨이 재등장한 것은 1950년대 중반이었고, 1960년부터는 화신산업이 미국 웨스팅하우스사의 총대리점이 되어 에어컨을 직수입 판매했다. 1968년 금성사는 미국 제너럴일렉트릭사와 기술 제휴로 에어컨 국내 생산을 개시했다.
에어컨 덕에 사람들은 더위를 피하는 대신 쫓아낼 수 있게 됐다. 하지만 물질세계에 이동이나 변환은 있어도 소멸은 없다. 에어컨은 실내에 있던 더위를 실외로 이동시킬 뿐이다. 에어컨은 돈 내고 더위 파는 사람과 돈 안 내고 더위 사는 사람을 실존하게 만든 물건이다.
- 전우용_ 역사학자 -
[ACRANX 아크랑스]
Adiemus_ Ein WeinerWalz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