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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년필

아하, 그렇군요!

by hitouch 2017. 6. 25.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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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당나라 때 관리 선발하는 기준은 ‘신언서판’(身言書判)이었다.  
신은 체격, 언은 언변, 서는 글씨체, 판은 판단력을 말한다.  
이들은 우리나라 조선시대까지도 사람의 인품을 가늠하는 주요 판단 준거였다.  
체격이 당당하지 못하면 심사가 꼬이기 쉽고, 말을 조리 있게 못 하면 본뜻을 왜곡시킬 수 있으며, 글씨가 졸렬하면 읽는 자에게 경시당하고, 판단력이 흐리면 어떤 일도 제대로 할 수 없다는 것이 옛사람들의 생각이었다. 

우리 선조들이 만든 ‘글씨’라는 말은 참으로 절묘하다.  
글의 씨앗이기에 글씨이며, 농부가 밭에 씨를 심듯 한 획 한 획 정성껏 써야 하기에 글씨이다.  
그래서 글씨 쓰기를 배우고 익히는 과정은 사람의 성품을 만들면서 드러내는 동시적 과정이었다.  
옛사람들이 글씨를 통해 인품을 살핀 데에는 합당한 이유가 있었다.  
글씨에도 대담성과 조심성, 호방함과 치밀함, 분방함과 단정함 같은 ‘성격’이 있다. 

동양의 붓이든 서양의 펜이든, 한 번 먹물이나 잉크를 묻혀 쓸 수 있는 글자가 얼마 안 되었다는 사실도 또박또박 글씨 쓰기를 강요한 측면이 있었을 터이다.  
부차적인 동작을 배제하고 글씨 쓰기에만 전념할 수 있게 해 준 필기구는 19세기에야 발명되었다. 손잡이 부위에 잉크를 저장하는 금속 펜은 1809년 영국에서, 먹물을 저장하는 붓은 1828년 일본에서 각각 만들어졌다.  
모관현상을 이용한 현대적 만년필은 1883년 미국의 보험 외판원 루이스 에드슨 워터맨이 처음 만들었다.  
그로부터 10여년 뒤에는 우리나라에서도 만년필이 서양식 학교의 시상품으로 흔히 사용되었고, 이윽고 붓을 대신해 사람의 인격과 생각을 표현하는 물건이 되었다. 

극작가 박진은 회고록에서 자기 벗 최상덕이 1939년 동양극장을 ‘말아먹은’ 일에 대해 언급하면서,  “워터맨 만년필로 신문 호외 내듯 수표를 발행했다”고 썼다.  
이 무렵에 이미 만년필은 인품이 아니라 부(富)를 표현하는 물건이었다.  
인품보다 재산을 훨씬 중시하는 시대엔, 글씨보다 필기구에 주목하는 문화가 생기게 마련이다. 

- 전우용_ 역사학자 - 


[ACRANX 아크랑스]


Isaac Albéniz_ Asturias by Ana Vidovic plays

https://www.youtube.com/watch?v=inBKFMB-y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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