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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 그렇군요!

by hitouch 2017. 12. 11.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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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랑 아리랑 아리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문경 새재는 웬 고갠고. 굽이야 굽이굽이가 눈물이로구나.” 길은 물을 만나면 끊어지고 산을 만나면 굽어진다. 인간의 평균적 신체를 기준으로 산을 넘는 데에 소요되는 시간과 체력 사이의 타협선에 만들어진 길이 고갯길이다.


조선시대 경상도 양산이나 합천 사람들은 조세곡을 어떻게 서울까지 운반했을까? 동남해안의 바닷길은 왜구 때문에 이용할 수 없었으니, 뭍길로 남한강 수로의 종점인 충주까지 한 사람이 쌀 한 가마니씩 지고 걸어야 했다. 지게 무게까지 합해 자기 몸무게의 두 배 가까이 되는 짐을 지고 문경 새재를 넘다 보면, 굽이굽이가 땀과 눈물일 수밖에 없었다. 한국을 대표하는 민요 ‘아리랑’에서 고개를 넘는 일이 아리고 쓰린 심정의 환유인 것도, 산이 많은 땅이라 고개 넘을 일이 많았기 때문이다.


고갯길을 넘지 않고 바로 산을 통과할 수 있게 해준 게 터널이다. 터널의 역사는 구석기 시대 사람들이 동굴 벽을 파냈을 때부터 시작되었는데, 이후 인간은 금·은·동·철을 캐내기 위해, 적의 성벽을 통과하기 위해, 도시의 생활하수를 성 밖으로 내보내기 위해, 수많은 터널을 팠다.


최단거리의 평탄한 뭍길을 얻기 위한 터널은 철도 교통이 개시된 뒤에 출현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터널은 1904년에 개통된 경의선 아현터널이다. 1932년에는 동양 최초의 해저터널이 통영에 만들어졌다. 한국에 도로용 터널이 급증하기 시작한 건 1967년 서울 사직터널이 준공되면서부터다. 1970년부터 78년 사이에 건설된 서울 남산 1~3호 터널은 도로와 방공호 기능을 겸하는 시설이다. 전국 대도시 땅속을 달리는 지하철도 터널 안의 철도다. 터널 굴착기계의 성능이 향상된 덕에 터널은 급속히 늘어났고, 길어졌다. 2016년 현재 한국의 터널은 2189개다.


현대인은 일부러 산에 오르지 않는 이상 고갯길을 넘을 이유가 없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인생 자체가 고갯길이니, 고갯길이 낯설다고 망연자실하지는 말아야 할 것이다.


- 전우용_ 역사학자 -



[ACRANX 아크랑스]


Abba_ The Winner Takes It All

https://m.youtube.com/watch?v=92cwKCU8Z5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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