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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량음료

사설 칼럼

by hitouch 2018. 8. 11.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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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듯하다.” 평소 미웠던 사람이 봉변당하는 걸 보거나 뜻대로 안 되던 일이 갑자기 풀릴 때 쓰는 말이다. 체증은 속앓이의 일종으로 몸의 병이자 마음의 병이었다. 밥을 먹으면 졸리는 것은 뇌로 가야 할 혈액이 위장으로 쏠리기 때문이라고 하니, 옛사람들이 체증을 마음의 병으로 생각한 것도 아예 근거가 없다고 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고민거리가 사라진다고 모든 체증이 풀리지는 않았다. 우리나라에서는 심리적 요인과 무관한 체증에 효능이 있는 특별한 물을 ‘약수’(藥水)라고 했다. 

상수도가 보급되기 전에는 거의 모든 사람이 우물을 파서 식수를 구했는데, 장소에 따라서는 광물질이 다량 함유된 물이 나오기도 했다. 근대 이후 광천수(鑛泉水)라는 별칭이 붙은 이 약수 중에서 탄산이 많은 물이 체증의 특효약으로 취급되었다. 

인류는 우물을 처음 파면서부터 탄산수를 접했을 것이나, 여기에 다른 향료를 첨가해 마시기 시작한 것은 17세기 이후이다. 17세기 중엽 파리 시민들이 천연 탄산수에 꿀이나 레몬즙을 넣어 마셨으며, 1767년에는 영국인 조지프 프리스틀리가 인공 탄산수를 개발했다. 1832년에는 미국인 존 매슈스가 탄산수를 대량으로 만들 수 있는 ‘소다 파운틴’(Soda Fountain)이라는 기계를 발명했다. 

한반도에 단맛 나는 탄산수가 ‘사이다’라는 이름으로 들어온 것은 1915년께로 추정된다. 1916년 조선총독부 경무총감부는 일본 고베산 ‘시도론 사이다’에 유해 성분이 포함돼 있다는 이유로 전량 폐기 처분했다. 1921년에는 나카하라 데쓰신이라는 일본인이 충청도 초정약수를 이용해 천연 사이다를 생산, 현재의 서울 중구 남산동에서 판매했다. 6·25 전쟁 중에는 미군용 음료로 코카콜라가 수입되었다. 탄산음료는 처음부터 ‘청량음료’로 불렸다. 맑고 시원한 음료라는 뜻이다. 이 음료를 마시면 잠깐이나마 속이 시원해지는 느낌을 받았기에, 이 작명에 반대하는 사람은 없었다. 

한국인이 청량음료를 마시기 시작한 지도 이제 100년 남짓 되었다. 일시적으로 체증이 내려가는 듯한 느낌에 익숙하다 보니, 사회의 체증을 근본적으로 치유하는 방도에 대해서는 관심이 옅어진 게 아닐까? 


[ACRANX 아크랑스]


Ed Sheeran_ Perfect (by 2CELLOS)

http://www.youtube.com/watch?v=TXHB9wL4WF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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