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6년 7월, 충청도 마량진 갈곶에 이양선(異樣船: 이상한 모양의 배) 두 척이 정박했다. 마량진 첨사와 비인 현감이 급히 달려가 선원들과 필담을 시도했으나, 그들은 한문도 아니고 한글도 아닌 이상한 문자를 사용했다. 선원들이 입은 옷도 그들이 일찍이 본 적 없는 이상한 모양이었다. 지방 관리들은 그들이 건네준 한문 문서를 받아 보고서야, 영길리국(英吉利國: 영국) 배라는 사실을 알았다.
증기기관으로 움직이는 선박을 발명하려는 시도는 1780년대부터 본격화했는데, 1807년 미국인 로버트 풀턴이 증기선을 상용화하는 데 성공했다. 처음 강물을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 큰 배로 만들어진 증기선은 곧 바다를 정복하기 시작했다. 1838년 두 척의 증기선이 대서양 횡단에 성공했고, 1845년에는 철제 선체를 가진 증기선이 출현했다.
조선 연안에 처음 나타난 이양선은 유럽식 대형 범선이었으나, 19세기 중반부터는 증기선, 또는 증기범선이 출몰했다. 1866년에는 대동강과 한강에도 미국과 프랑스의 증기선이 나타났다. 1871년 신미양요 때에는 미군이 조선군 포로들을 군함에 승선시켜 사진을 찍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 기선이라는 단어는 1876년 개항 이후부터 사용되었다. 그해 11월 일본 미쓰비시 기선회사가 매월 나가사키-쓰시마-부산을 잇는 정기항로를 개설했다. 1885년에는 서울 한강변 상인들이 대흥회사를 설립하고 미국 기선을 사들여 강운(江運)과 해운(海運)에 투입했다. 이듬해에는 정부 기관 전운국도 기선을 구입하여 조세곡 운송을 개시했다.
조세를 배로 운반하는 조운제도로 인해 포구와 나루가 잘 발달된 편이어서, 기선을 이용한 운수업은 개항 이후 가장 빨리 발전한 산업이었다. 외국의 신사상도 기선을 거쳐 도입되었다. 비행기 여행이 일반화하기 전까지 나라 밖으로 나가는 여행은 말 그대로 해외여행, 즉 기선으로 바다를 건너는 여행이었다. 한국인들이 분 단위 시간표에 익숙해진 것도 기선 덕이었다.
오늘날 증기선은 사라졌지만 다른 연료를 사용하는 동력선들이 전세계 바다를 누빈다. 기선은 육지 곳곳에 흩어진 채 나뉘어 있던 세계를 뒤섞어 하나로 만든 대표적인 물건이다.
- 전우용_ 역사학자 -
[ACRANX 아크랑스]
Rod Stewart_ Sailing(orchestr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