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0년께, 서울에 온 한 독일인이 종로 거리를 산책하다가 멋진 채색 문양이 새겨진 돗자리를 쌓아둔 가게를 발견했다. 대항해시대가 열린 이래, 유럽인들은 다른 대륙의 특산물을 본국에 가져가 팔면 꽤 많은 이익이 남는다는 사실을 잘 알았다. 현대의 해외여행객이라고 다를 바도 없지만.
화문석의 상품가치를 확신한 이 독일인은 상인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이거 얼마요?” “5원이요.” “내가 100개를 산다면 얼마에 주겠소?” “600원이요.” 자기 기준에서 터무니없는 답을 들은 독일인이 항의했다. “많이 사면 깎아줘야지 값을 더 부르는 법이 어디 있소?” 한국 상인은 되레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처음 당신은 한장에 얼마냐고 물었소. 내가 5원이라고 하니 100장을 사겠다고 했소. 이거야말로 내가 값을 너무 싸게 불렀다는 증거 아니겠소?” 자본주의적 상품 거래에 익숙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상품값을 매기는 원칙부터 달랐다.
옛날 개별 상품의 가격은 인간관계에도 영향을 받았다. 상인들은 단골손님과 뜨내기손님을 구별해서 값을 불렀으며, 물정에 밝은 사람과 어리바리한 사람은 그들의 경험대로 값을 지불했다. 집에 새 물건을 들이는 일이 흔치 않았기에, 눈치 보고 머리 굴려가며 물건값을 흥정하는 일은 색다른 경험이었다.
상품 거래가 일상이 되면, 흥정은 재미있는 일에서 피곤한 일로 바뀐다. 이 피곤함을 물리치고 동일 상품 동일 가격의 원칙을 세우기 위한 단속과 캠페인이 한세기 가까이 지속되었으나, 큰 효과는 없었다.
1948년, 미국의 한 식품 체인점 사장이 필라델피아 드렉설 기술대학 학장에게 판매한 상품 정보를 쉽고 빠르게 취합하는 방안에 대해 조언을 구했다. 이 얘기를 들은 대학원생 버나드 실버는 친구인 노먼 우들랜드와 함께 모스 부호를 응용하여 바코드를 만드는 데에 성공했으나, 이 코드가 실용화된 것은 1974년에 이르러서였다.
대한민국은 1988년에 유럽상품코드(EAN)로부터 서울올림픽을 기념하는 의미로 880번의 상품 코드를 부여받았다. 이로써 흥정 없는 거래의 시대가 활짝 열렸다. 더불어 현대인도 상인과 대화하는 사람에서 상품 가격표와 대화하는 사람으로 바뀌었다.
- 전우용_ 역사학자 -
[ACRANX 아크랑스]
G.Rossini_ William Tell Overture Fin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