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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시 “걸음이 걸어간다” 입니다

오늘의 시(詩)

by hitouch 2025. 1. 23.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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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RANX 오늘의 시]
"오늘 하루는 선물입니다"
1월23일 오늘의 시는 "김기택"의 “걸음이 걸어간다” 입니다.


걸음이 걸어간다​

​                   김기택

​걸음이 저 혼자 걸어간다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사람 하나가 걸음 위에 얹혀 있다.
그는 공원 벤치에 앉아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생각에 잠겨 다른 세상에 가 있는 것 같기도 하고
걸음 위에서 떨어지지 않도록
흔들흔들 중심을 잡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나른한 햇살에 꾸벅꾸벅 졸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거나 말거나 걸음은
제 등에 누가 타고 있는지도 모른 채
뒷다리로 앞다리를 앞지르고
앞다리로 뒷다리를 끌며 걷고 있다 
오래전부터 힘겨운 등짐을 지고 있었다는 듯 
그 무게가 등뼈가 되고 살이 되고 핏줄이 되었다가 
다리로 내려와 걸음이 되었다는 듯 
제 무게를 하나하나 땅에 심으며 걷고 있다 
이 길을 지나갔던 모든 걸음의 무게를 받으며 걷고 있다 
길은 이미 걸음에 새겨져 있고 
핏줄 지도처럼 계속 갈라지며 가고 있고 
걸음 위에 얹힌 사람은 걸음이 가는 대로 끌려가고 있다 


[ACRANX 아크랑스]

 

Debussy_ Nocturnes, CD 98: I. Nuages

http://www.youtube.com/watch?v=jBCnFj28kE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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