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RANX 오늘의 시]
"오늘 하루는 선물입니다"
1월24일 오늘의 시는 "도종환"의 “결실” 입니다.
결실
도종환
결실이라는 말을 나는 함부로 쓰지 않는다
충만이라는 말의 무게와
그것이 만들어내는 빛깔과 향기에
감사해하지만 그건 내가 만든 게 아니다
사람들은 내 몸의 터질 듯한 과육에 주목하지만
여기까지 함께 온 나뭇잎들을
나는 더 애틋하게 바라본다
내 몸 안쪽에도 내상의 흔적이 많지만
태풍에 찢긴 잎은 상처가 더 깊어졌고
나 대신 벌레에게 살을 내준 잎은
몸 한쪽이 허물어졌다
내게 물방울을 몰아주고 난 뒤 바싹 마른 잎과
깊은 멍이 든 잎 들이
여기까지 함께 왔다
그들 없이 나 혼자 왔다면
팔월의 칼끝 같은 시간을 넘지 못했으리라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내 몸을 붙잡아준
꼭지의 헌신이 없었다면
나는 노랗게 익어가는 시간까지 오지 못했으리라
이들과 함께 왔다
나는 나무의 일부이지 전부가 아니다
[ACRANX 아크랑스]
Elgar_ Enigma Variations 'Nimrod'
오늘의 시 “남들이 시를 쓸 때” 입니다 (0) | 2025.01.25 |
---|---|
오늘의 시 “서울의 겨울” 입니다 (0) | 2025.01.25 |
오늘의 시 “걸음이 걸어간다” 입니다 (0) | 2025.01.23 |
오늘의 시 “너무 많은 행복” 입니다 (0) | 2025.01.22 |
오늘의 시 “주름을 엿보다” 입니다 (0) | 2025.01.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