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무 3년(1899) 4월29일 토요일 오후 1시에 학부에서 각 어학교(語學校) 학생들의 대운동회를 전 훈련원에다 연합하여 열었는데 이때에 마침 날씨가 화창하며 화초가 만발하여 경치가 또한 절승하더라. 훈련원 대청 위에는 대한 태극 국기를 한가운데 깃대에다 높이 세우고 그다음에는 동서양 통상(通商) 각국 국기를 차례로 세웠으며 각색 의자를 절차 있게 늘어놓고 청나라 사람이 요리를 각색으로 판매하더라.”(<독립신문> 1899년 5월1일자)
우리나라에서 운동회장에 각국 국기를 나란히 늘어세운 것은 기록상 이때가 처음이다. 이 운동회에 참가한 학교는 영어, 러시아어, 프랑스어, 독일어, 중국어, 일어 학교였으니 태극기를 포함하면 7개국 국기가 걸렸을 것이다. 운동 종목은 100보 달리기, 200보 달리기, 넓이뛰기(멀리뛰기), 높이뛰기, 철구(鐵球) 던지기(투포환), 씨름, 줄다리기, 나귀 타고 달리기의 8개였다.
유럽 각국의 명사들이 프랑스인 쿠베르탱의 제창에 호응하여 국제올림픽위원회(IOC)를 창설한 것은 1894년, 그리스 아테네에서 제1회 근대올림픽이 열린 것은 이태 뒤인 1896년이었다. 제국주의 국가들 사이의 식민지 분할 경쟁이 치열하던 때로서, 이들은 국제 스포츠 경기가 전쟁 위험을 줄이는 데에 도움이 되리라고 판단했다. 그들이 1500년 전에 중단된 그리스의 고대올림픽을 부활시킨 이유는, ‘하던 전쟁도 중단하던’ 관행을 되살리기 위해서였다. 올림픽 정신의 요체는 ‘가짜 전쟁을 함으로써 진짜 전쟁을 막는 것’이었고, 운동장에 나란히 걸린 만국기는 이 ‘평화로운 세계대전’의 상징이었다.
1909년 5월1일, 개성 소재 각 학교 연합 운동회가 반구정(反求亭) 앞 광장에서 열렸다. 각 학교 학생들은 직접 만국기 600여 매를 만들어 창공에 걸었다. 이후 학교 운동회건 단체 운동회건, 운동장을 만국기로 장식하여 작은 올림픽 경기장처럼 만드는 것은 일반적 관행이 되었다. 초등학생들조차도 만국기가 걸린 운동장에서 달리고 뛰면서, 국가와 세계를 인지했다.
현대인들에게 만국기는 자기가 국가의 일원인 동시에 인류의 일원임을 가르쳐준 물건이며, 전쟁 없이 공존하는 세계를 향한 이상을 일깨우는 물건이다.
- 전우용_ 역사학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