獨斷爲之(독단위지)
홀로 판단하여 그것을 했다는 의미.
세종은 신하들의 말을 존중했으나 고분고분한 한 임금은 아니었다.
대신과 장수와 재상들이 다 불가하다고 했지만 파저강 토벌을 감행했고 훈민정음 창제 역시
대다수 신하의 반대를 무릅쓰고 추진한 비밀 프로젝트였다.
“내가 여러 가지 일에서 다수의 의논을 쫓지 않고, 대의를 가지고 강행한 적이 자못 많다.
수령육기, 양계축성, 행수직(行守職)을 자급(資級)에 따르는 등의 일은 남들은 다 불가하다고 하는 것을
내가 홀로 여러 사람의 논의를 배제하고 행했다.
세종의 의사결정 방식은 크게 세 가지로
첫째 만장일치다.
군사에 관계된 사안과 사형집행 여부와 관련해서는 회의 참석자 중 누구라도 제기한 문제가 해소된 다음에야 결정했다.
둘째 다수결이다.
세종은 고을을 합친 후 그 대표 이름을 결정할 때와 세제 개혁을 추진하는 과정에서는 다수결 방식을 택했다.
"여러 사람이 말한 것을 참작해서 많은 것으로 따르면, 비록 맞지 않는다 하더라도 또한 크게 틀리지는 않을 것이다."
셋째 독단결정이다.
관료제 개혁, 영토 개척, 한글창제 등 기득권 세력의 반대로 그 결정이 무산될 것으로 예상될 경우 세종은 “의심이 없는 것은 독단으로 하는 것 (獨斷爲之)”이라며 반대를 부릅쓰고 결정하고 추진했다.
정리하면, 세종은 그 결정이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할 때 만장일치라는 방법을 통해 신중을 기했고,
고을의 이름 등 명예와 자존심이 걸린 문제나 구성원들의 지지와 자발적 참여가 필요한 경우에는 다수결 방법을 취했다.
그리고 공동체를 위해 꼭 필요하지만 회의 참석자의 이해관계로 그 과업이 좌초될 위험이 예상되는 경우에는
미리 충분히 묻고 다수의 지혜를 얻되 최종적으로는 반대를 무릅쓰고라도 스스로 결단을 내려 추진했다.
- 세종의 적솔력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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