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시티(city)를 한국과 일본에서는 도시(都市), 중국에서는 성시(城市)라고 한다. 물화를 교환하는 장소인 시(市)는 도시의 핵심 구성 요소다. 도시가 출현한 이래 시에는 여러 종류의 상업용 건물들이 들어섰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물건을 팔기만 하는 곳을 전(廛), 생산과 판매를 겸하는 곳을 점(店), 용역을 제공하는 곳을 포(鋪)로 나누어 불렀다. 백목전, 유기점, 전당포 등인데, 이들 중 순수 상업시설인 전의 규모가 가장 컸다.
유럽에서든 아시아에서든, 상인들은 물종 단위로 편제되었다. 유럽의 길드에 해당하는 상인조직을 조선시대에는 도중(都中)이라고 했다. 상인이 다른 도중에서 파는 물건을 취급하는 것은 상도덕 위배를 넘어 범죄로 다스려졌다. 하나의 상업용 건물 안에 여러 가지 상품을 모아 두고 파는 백화점은 중세적 상업 질서가 무너진 뒤에야 출현했다.
1887년, 프랑스 파리에서 매장 면적 2만5천㎡의 초대형 백화점 봉마르셰가 문을 열었다. 드레퓌스 사건을 고발한 양심적 지식인이자 작가였던 에밀 졸라는 이 건물을 ‘현대의 신전’으로 정의했다. 한자 문화권에서는 세상의 모든 물건을 ‘만물’(萬物)이라고 하는데, 디파트먼트 스토어(department store)를 왜 만화점이나 천화점이 아니라 백화점이라고 번역했는지는 알 수 없다.
우리나라에서는 1908년에 설립된 한양상회가 처음 백화점을 표방했다. “해외 여러 제조장과 특약을 체결하고 참신 유행의 양호품을 수입하며 우리나라 중앙인 한성 종로에 자리하여 장대한 가옥에 화려한 진열로 우리나라 제일가는 데파트먼트스토아, 즉 최(最) 완전한 점포를 이루었나이다.”(<대한매일신보> 1910년 1월1일치 광고) 이에 앞서 1906년 일본 미쓰코시(三越) 오복점이 서울 충무로에 지점을 내고 직물을 팔기 시작했는데, 1929년 현재의 신세계백화점 자리에 새 건물을 지은 뒤 상호를 미쓰코시백화점으로 바꾸었다. 이후 백화점은 당대 최고급 물건들을 파는 특권적 상업시설로 자리를 굳혔다.
백화점은 현대의 최고신인 물신(物神)이 거처하는 신전이다. 물신은 헌금한 만큼 은총을 베푸는 공정한 신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신에게는 사랑, 자비, 긍휼 등 옛 신들이 가졌던 미덕이 없다. 사람은 자기가 숭배하는 신을 닮는 법이다.
- 전우용_ 역사학자 -
[ACRANX 아크랑스]
Air Supply_ Goodby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