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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목시계

사설 칼럼

by hitouch 2018. 4. 23.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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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시황이 동남동녀 500명을 뽑아 불로초를 구해 오게 한 것은 시간에 저항하기 위해서였다. 물론 그는 실패했다. 시간은 천체 운행의 리듬 자체였고, 어떤 권력도 감히 맞설 수 없는 신성한 실체였다. 권력은 시간을 측정함으로써 신과 소통하고, 시간을 관리함으로써 신을 대행하는 역할에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시계는 권력자가 신의 대행자임을 보증하는 신성한 물건이었다. 그래서 시각을 알리는 권리도 왕궁과 신전만 가질 수 있었다.


시계에서 신성이 빠져나가고 물질성이 그 자리를 대신하기 시작한 것은 16세기 이른바 ‘대항해시대’부터였다. 항해하는 배 안에서 밤하늘의 별자리를 관찰하여 시간을 측정하는 건 별 의미가 없었다. 정밀한 기계식 시계는 바다를 정복하기 위한 무기였고, 바다를 정복한 자가 시간도 지배했다. 역사상 어떤 신도 지구상의 시간을 통일하지는 못했으나, 해가 지지 않는 자본주의 해양 제국을 건설한 영국은 이 일을 해냈다. 1884년, 영국 그리니치 천문대를 지나는 자오선이 세계 시간의 기준점이 되었다.


중국 천자(天子)가 내려주는 책력(冊曆)에 의존하던 조선의 시간도 이 무렵부터 변하기 시작했다. 1882년 이후 서구 각국과 통상조약을 체결함으로써 ‘세계 시간’이 조선 사회에 침투했다. 더불어 가정용과 개인용 시계도 도입되었다. 1899년 봄 관립 외국어학교 연합운동회가 열렸는데, 종목별 우승 상품은 금시계였다. 이듬해 가을, 관립 독일어학교 하기(夏期) 시험 1등상도 독일 세창양행에서 제공한 금시계였다. 1902년에는 서울에 전문 시계포도 생겼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손목시계의 보급이 급속히 확대되어 1930년대에는 모던보이, 모던걸의 필수품처럼 되었다.


가정용 벽시계와 손목시계는 개인이 권력의 매개 없이 직접 시간과 대면할 수 있게 해주었다. 이제 시간은 눈으로 볼 수 있으며, 더하거나 빼거나 나눌 수 있는 물질이 되었다. 더불어 시간은 ‘신의 섭리’를 표시하는 신성한 실체의 지위에서 벗어나 ‘돈’이 되었다.


- 전우용_ 역사학자 -


[ACRANX 아크랑스]


Hans Zimmer_ Time

https://www.youtube.com/watch?v=fNkynm9Zx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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